당연하지 않은 것들 🙂
지난 주말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안내산악회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등산을 다녀왔어요. 안내산악회는 인터넷 카페에서 산행지를 골라 전세버스를 타고 산에 다녀오는 일회성 산악회인데요. 등산하기 딱 좋은 봄 날이기도 했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산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답니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산행지를 찾으려고 카페에 접속했어요. 다음주 토요일에 출발하는 버스는 이미 신청자가 가득 차 있더라고요. 반면에 일요일에 출발하는 버스는 텅 비어있었어요. 다들 토요일에 열심히 운동도 하고 나들이도 다니다가, 일요일에는 못 다한 집안일도 하면서 푹 쉬려는 계획인가봐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틀동안 쉬는 일상이 익숙할거예요. 오늘 어울더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만들어진 건 없거든요.
20년 전 산별교섭으로 본격화 된 주5일제
주말 이야기를 했으니까, 주5일제(주 40시간제)부터 이야기를 해볼게요. 주5일제법이 통과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3년입니다. 논의가 시작된 건 그로부터 5년 전인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외환위기로 실업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한 거죠.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임금, 휴가일수, 제도 도입 시기등을 두고 논의를 해 온 끝에 2003년이 되어서야 법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법안 제정에 불을 붙인 것은 금속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의 산별교섭(한 회사가 아니라 산업단위의 교섭)이었어요. 금속노조가 2003년 7월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에 합의했고, 그로부터 3주 뒤인 8월에 현대자동차 노사가 주5일제 도입에 합의하면서 노동현장에서의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거죠.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늘 그렇듯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생산성이 떨어져서 나라가 망하고 경제가 망한다, 월요병이 더 심각해진다는 등 다양한 우려가 있었지만, 금속노조는 수 차례의 교섭과, 파업 투쟁을 통해 주5일제를 쟁취해냈고 국회 역시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주5일제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경제가 망했나요? 나라가 망했나요? 아뇨, 우리 삶이 더 행복하게 달라졌죠.
“그거 직장내 괴롭힘 아니야?”
주5일제로 일터 밖에서의 삶이 바뀌었다면, 일터 안에서의 삶은 어떨까요. 예전에 저는 직장 상사가 괴롭히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때려치라는 말 말고는 방법이 없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야, 그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니야? 신고해!” 라는 말을 하곤 해요.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나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부당한 일들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됐어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회적 이슈가 있었어요. 기억하고 계실 지 모르겠지만 2014년 대한항공의 일명 ‘땅콩 회항’사건, 2018년 서울아산병원의 신입 간호사가 ‘태움(병원 내 집단 괴롭힘)때문에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 2018년 말 IT기업 위디스크의 양진호 회장이 직원을 폭행한 동영상이 공개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의 보호를 받는 법안도 의결됐어요. 현장실습생들이 적용받는 조항인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이 추가로 적용된 거죠. 2017년 콜센터 현장실습 도중 실적 압박을 호소하다 자살한 전주 콜센터 홍수연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한 뒤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고 해요.
5월은 노동절이 있는 달이예요. 지난 출근준비 ‘부들부들’에서도 잠깐 소개해드렸었죠.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파업이 1886년 5월 1일에 있었던 것이 노동절의 유래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하던 경찰의 발포로 10여명이 죽고 130여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어요.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누군가의 희생, 혹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늘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토요일에 놀고, 6시에 퇴근할 수는 없겠지만 노동절이 있는 5월만큼은 이런 사실을 잠시나마 기억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전히 탄압받고 있는, 외롭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해주신다면 그 분들께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싸우다 사망하신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