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는 말을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연인 간 싸움의 한 장면이 떠올라요. 사람이 관계를 맺다 보면 안 맞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죠. 특히 연인처럼 깊은 관계는 그게 더 빨리 드러나죠. 그치만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결국 싸움으로 커지는 거죠.
늘 싸움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로 끝나죠. 잘못을 인정하고 더 나은 관계를 약속하는 거죠. 뭐,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끝나야만 해요. 그래야만 헤어지지 않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연인들에게만 필요한 언어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지속되어야 하는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말이예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 직장 동료 관계에서도 자주 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는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요.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기 어려운 관계도 있잖아요.
이상하게도 일할 때는 저 말을 듣기가 참 힘들어요. 분명히 저 사람이 잘못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해요. 정말 화가 나죠. 그렇게 미워하게 된 직장 동료가 한둘이 아니예요. 잘못을 인정하면 인사평가를 박하게 받을 걱정 때문일까요? 아니면 내가 능력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일까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왜 사과를 안 해?! 다 이유가 있지
인간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나 피해에 대한 우려로 스트레스를 받는대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겁이 더 먼저 나서 방어논리만 더 커진다고 해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조상님 말씀이 딱 맞죠. 어찌 보면 잘못한 걸 알고 있을수록 스트레스 받는 걸 숨기려고 뻔뻔하게 구는 걸지도 몰라요.
잘못된 선택을 고수하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는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큰맘 먹고 차를 샀는데, 누가 내 차보고 못생겼대요.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죠. 그거 신경 쓰는 거 너무 귀찮고 힘들잖아요. 그래서 내 선택이 잘 된 거라고 계속 합리화하는 거죠. 내가 고른 차가 최고야! 제일 멋있어! 유용해! 이러는 거죠. 잘못한 일도 마찬가지. 잘못된 선택이 잘 된 거라고 계속 합리화하는 게 당장의 내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방어인 거죠.
*사과는 왜 어려울까? ☞ [오마이뉴스] ‘잘못했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근데 문제는 세상이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혼자만 살 거면 '오 스트레스 관리 잘 했어 나 자신!' 이럴 수 있겠지만 내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스트레스받고 있을 수도 있어요. 오늘 보고 말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내일도 또 봐야 할 회사 동료와 이런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어요. 잘못했다는 말, 혹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났을 일이 제때 그 한마디를 못해서 깨져버린 신뢰, 틀어져 버린 관계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빠르게 인정하고 쿨하게 사과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과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내 입장을 밝히고 관계를 이어 나가려고 노력했으면 해요. 말 섞기 싫다고 외면하고 “쟤 이거 할 거냐고 물어봐”라면서 애꿎은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자고요. 상대에게 화난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받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은 중요해요. 저는 그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서로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어요.
사과,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의 시작
사과를 요구받았을 때,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과할 일인지 결정하는 거예요. 사과를 요구하는 상대의 지적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받아들이는 사람의 오해나 왜곡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오해를 지적하려고 하지는 말고, 그 요구를 받은 이유를 충분히 고민해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적받은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면 됩니다.
만약 상대의 지적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하면 돼요. 어쩔 수 없었다거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회피성 발언은 금물! 울고불고 빌면서 과장되게 사과할 필요도 없어요.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계획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업무 관계에서는 사과 요구가 시말서, 반성문이 될 때도 있어요. 상급자/회사가 하급자/노동자에게 요구하는 경우죠.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괴롭히기 위해서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반성문을 강요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반성과 사죄의 의미를 담은 경위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됩니다. 부당한 경위서 작성을 강요하는 것은 거부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어요.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사과의 과정은 차이를 확인하고 조율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누군가를, 혹은 의견이 다른 누군가를 조직에서 없애고, 내 삶에서 없애고, 세상에서 없애는 방향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화해가 아닐까 해요.
지난 시즌에서는 일에 도움이 되는 도구나 책을 소개했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내일은 함께하는 동료들을, 출근하는 내 회사를 조금은 덜 미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레터를 보낼게요. 어울더울, 살아가보자구요.